궁중가례복식(宮中嘉禮服飾)이란 무엇인가?
유송옥

궁중가례란 국왕을 비롯하여 왕세자, 왕세손과 같이 왕실의 혼례를 지칭하는 것으로서 그 절차는 납채(納采), 납징(納徵), 고기(告期), 책비(冊妃), 친영(親迎), 동뢰(同牢)의 육례(六禮)로 진행되기 때문에 여러 달에 걸쳐 수천 명의 인원이 동원되는 나라의 큰 잔치였다.
 납채(納采)는 대궐에서 간택된 왕비집에 청혼하러 사자(使者)를 보내는 의식인 납채의와 왕비집의 역할을 하는 별궁에서 청혼을 받아들이는 수납채의로 진행된다.
 납징(納徵)은 혼인이 이루어지게 된 징표로 대궐에서 사자로 하여금 별궁에 예물을 보내는 의식인 납징의와 왕비집에서 이 예물을 받는 수납징의로 진행된다.
 고기(告期)는 대궐에서 길일을 택하여 가례일로 정해 이것을 별궁에 알려주는 고기의와 왕비집에서 이를 받는 수고기의로 진행된다.
 책비(冊妃)는 대궐에서 왕비를 책봉하는 의식인 책비와의 왕비집에서 왕비로 책봉받는 수책비의로 진행된다.
 친영(親迎)은 왕이 왕비의 집 역할을 했던 별궁에 가서 왕비를 맞아들이는 의식이다.
 동뢰(同牢)는 왕이 왕이 친영일 밤에 대궐로 맞아들인 왕비와 서로 절한 뒤에 술과 찬을 나누고 첫날밤을 치루는 의식이다.  (사진 - 국립중앙박물관 의궤반환 기념 한국궁중복식연구원 패션쇼 "조선의 혼 다시살아나다" 중)
※왕의 복식※
 가례시에는 법복과 의대를 입는데 법복으로는 면복, 조복, 상복을 입었으며 의대로는 편복을 입었다.
1.면복 ; 면복은 왕이 가례 때 육례 중 납채, 고기, 친영, 동뢰에 법복으로 입었으며 종묘와 사직에 제사지낼 때 제복으로 입었고 정조(正朝), 동지(冬至), 조회(朝會) 때는 대례복으로
왕의 권위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왕권의 상징복이다. 면복의 구성을 살펴보면 세종 28년 상정된 오례의 관면도(冠冕圖)에 제정된 규정에는 규(圭), 면(冕), 의(衣), 상(裳), 대대(大帶), 중단(中單), 패(佩), 수, 폐슬(蔽膝), 말(襪), 석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방심곡령은 가례시 법복으로 입을 때, 종묘와 사직에 제사지낼 때인 제복(祭服)으로 입을 때에 착용하였다.
2.조복 ; 조복은 원유관-강사포로 구성된다. 가례시에는 육례 중에서 납징-책비의에 입는 법복이다. 또한 조복은 삭막(朔望)-조강-진표(進表)-조관(朝觀)에 입는 예복이다.
3.상복 ; 왕의 상복인 익선관과 곤룡표는 왕이 일상시무를 볼 때 입는 시무복(時務服)이다. 또한 가례시에는 동뢰연에서 면복으로 행례한 후 갈아입는 의복이다.
※왕비의 복식※
 가례시에는 법복과 의대를 입는데 가례시 법복으로는 적의(翟衣)를 입었으며 의대로는 노의, 장삼 등을 입었다.
 왕비의 가례시 법복으로 적의(翟衣)에 별의(別衣), 내의 (內衣), 폐슬(蔽膝), 대대(大帶), 수(綬), 하피, 상전사후사(裳前三後四), 수(繡), 면사(面紗), 적말(赤襪), 적석, 흉배(胸背)를 착용하였으며, 의대로는 흉배금원문노의, 흉배겹장삼, 겹장삼, 개오, 중삼, 경의, 겹면사, 수사지, 천의, 유저고리, 겹저고리, 유호수, 겹치마, 겹이의, 세수장삼, 활한삼, 삼아, 대요(帶腰), 대, 노의대, 자초립, 겹너울, 자적향직화온혜, 흑웅피화온혜를 착용하였다.
1.적의 ; 적의는 왕비의 상징을 나타내주었던 명복(命服)으로, 책비의, 친영의, 동뢰연에 입었던 법복이다. 조선왕조초 명의 사여관복(賜與冠服)을 통하여 이루어진 중궁제 그대로의 왕비복을 예복(禮服 즉 법복(法服)으로 삼아 「경국대전」에 제도화하고, 임진란 이후 국속화되었으며 저고리-치마 등 우리나라 제도와의 이중구조 속에서 전승되었다.
2.노의 ; 노의는 대홍향직으로 만든 포로서 봉황을 금수(金繡)한 흉배를 달았으며, 소매끝에는 남색한삼을 붙이고 여기에 자색라로 된 노의대를 띠었다.